1989년 영화 백 투 더퓨처 2에서 바라본 2015년의 모습은 과학의 발달로 당시로써는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보였어요. 하늘을 나는 자동차, 공중 부양하는 스케이트보드 등 여러 가지 기발한 모습들로 놀라움을 선사했는데, 특히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은 운동화가 있었어요. 미래의 자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으로 변장하기 위해 마티(마이클 J 폭스)가 신은 ‘자동 신발 끈’이 달린 나이키 운동화예요.
‘나이키를 구한 디자이너, 팅커 햇필드’
나이키의 역사를 말할 때 창립자 필 나이트와 빌 바우어만의 만남과 회사의 설립, 1971년 나이키 로고인 스우시(Swoosh)를 단돈 35달러에 캐롤린 데이비슨에게 의뢰한 일, 그리고 마이클 조던까지. 특히 에어맥스 1(1987년)과 마이클 조던의 에어조던3(1988년)를 디자인한 팅커 햇필드는 나이키 역사의 한 페이지에 당당히 수록되어 있어요.
오늘은 혁신적인 디자인과 창의력,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신발 디자이너 중 한 명인 팅커 햇필드와 나이키의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해요. 신발과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랄께요.
선수 시절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일 수도 있지만 나이키를 사랑하는 미국인들에게 팅커 햇필드는 유명한 디자이너라고 해요. 젋은 세대뿐만 아니라 장년층까지 팅커 햇필드는 과거와 현재의 나이키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라고 해요. 팅커 햇필드는 고등학교 때 지역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장대높이뛰기 선수로 유명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리건 대학교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을 하게 돼요.
이때 평생의 스승인 나이키 공동창립자 빌 바우어만 코치를 만나게 되는데, 빌 바우어만 코치는 육상부 코치를 하면서 선수들의 기록 향상을 위해 러닝화와 육상화를 디자인 중이었다고 해요. 항상 운동화를 손볼 수 있게 기구들을 가지고 다녔는데, 팅커 햇필드에게 올림픽 대회까지 나갈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 줬다고 해요.
하지만 대학 2학년 연습 도중 5m 높이에서 떨어져 발목 골절 부상을 당하게 되고, 5번의 수술과 2년간의 재활훈련을 하게 돼요. 심각한 부상으로 의사들과 코치들은 선수 생활이 끝났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팅커 햇필드는 심각한 좌절감을 느꼈다고 해요. 이때 평생의 스승인 빌 바우어만은 한쪽 다리를 저는 그를 위해 한쪽 뒤꿈치가 높은 특수 육상화를 제작해서 계속 육상부에 나올 수 있도록 도왔어요.
덕분에 계속해서 육상부에 남아 학교를 졸업할 수 있게 된 팅커 햇필드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남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해요. 부상으로 인해 건축학으로 전공을 변경하고 그림 그리는 소질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팅커는 빌 바우어만이 운동화를 제작하는 것에 도움을 주게 돼요.
나이키 입사
나이키가 농구화와 러닝화에 집중하는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에어로빅이 유행하게 돼요. 리복은 업계 최초로 에어로빅화를 출시하면서 인기를 끌게 되고, 나이키는 업계의 선두 자리가 위태롭게 되면서 디자인팀을 강화하고 자체 내에서 디자인 대회를 열어서 위기를 타개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당시 박람회와 디스플레이 유통업계에 있던 팅커 햇필드에게 디자인 대회 참가 초대장을 보내고, 팅커는 대회에 참가하게 돼요. 조깅과 산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운동화를 어필한 프레젠테이션은 성공하게 되고, 이틀 뒤 나이키의 정식 디자이너로 채용되고 짧은 시간 내에 수석 디자이너로 승진하게 돼요.
에어맥스 1
나이키의 에어 솔 기술은 1979년 테일 윈드와 1982년 에어 포스 1에 이미 사용된 상태인데, 파리 여행 중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조르주 퐁피드 센터’에 영감을 받아서 에어쿠션을 더 넓혀서 안정감을 주고 시각적으로 운동화 내부를 보여주는 파격적인 디자인을 시도했어요. 건물 구조와 파이프가 전부 겉으로 드러나 보였던 조르주 퐁피드 센터는 당시 프랑스 사람들에게 악평과 호평을 동시에 받았는데, 역시 에어맥스 1의 스케치를 보고 나이키의 경영진들도 악평을 쏟아내었다고 해요.
신발이 약해 보이고, 불안정하게 보여서 아무도 안 살 거라는 우려와 함께 팅커 햇필드와 그의 팀들을 해고하려고 했던 몇몇의 경영진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출시한 에어맥스 1은 결국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어요.
마이클 조던과 에어조던 3
70년대 말과 80년대 카림 압둘 자바와 같은 슈퍼스타들의 등장으로 운동화가 패션의 필수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어요. 마이클 조던은 이미 빅스타였지만 초기 에어조던 제품에 실망해서 나이키를 떠나 아디다스로 옮기려고 했어요. 특히 조던 1과 2의 디자이너였던 피터 무어는 마이클 조던을 아디다스로 데려가기 위한 산업 스파이였다고 하니 조던의 아디다스 이적은 거의 확정이 된 상태였어요.
급해진 나이키 경영진과 필 나이트 사장은 팅커에게 조던 3의 디자인을 맡겼어요. 지지부진했던 조던 3 프로젝트는 이미 6개월이 지연된 상태였기 때문에 팅커는 아시아 지역을 돌면서 서둘러 시제품을 만들었다고 해요. 마침내 마이클 조던과 만나기로 한 날, 필 나이트 사장과 팅커 햇필드, 스포츠 마케팅 팀장이 도착했고, 조던과 그의 부모님은 약속 시간이 4시간 지난 후 회의장에 모습을 들어냈다고 해요. 이미 마이클 조던은 아디다스에 설득을 당한 상태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고 해요.
회의장에 들어오자마자 마이클 조던은 신발을 먼저 보여달라고 요구했지만, 팅커는 침착하게 그림을 그리며 설명을 한 후, 천천히 천을 벗기고 운동화를 공개했어요. 농구화로써 처음 시도하는 미드컷 스타일과 부드러운 가죽 재질 그리고 농구화에 최초로 사용된 코끼리 무늬 등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던 마이클 조던은 결국 다시 나이키와 계약하고, 새 시즌을 에어조던 3를 신고 시작하게 돼요.
그해 에어조던 3를 신고 그 유명한 자유투 라인 덩크로 슬램덩크 대회 우승을 하고, 조던 3는 대성공을 거두게 돼요. 필 나이트 사장은 지금까지도 팅커가 회사를 구했다고 고마워한다고 해요.
에어조던 시리즈
그 이후 팅커 햇필드는 마이클 조던과 함께 에어조던 시리즈를 만들게 되는데 가볍고, 공기가 통해서 쾌적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메시 소재 도입 등 에어조던 시리즈는 큰 성공을 거두게 돼요. 특히 1990년 완성된 에어조던 6를 신고 1991년 마이클 조던은 첫 우승을 차지하게 되고, 이후 마이클 조던은 역사적인 3핏을 차지하게 돼요. 하지만 마이클 조던은 1994년 아버지의 피살로 은퇴 후 야구에 도전하게 돼요.
팅커 햇필드는 조던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해 에어조던 10의 밑창에 10개의 빨간색 줄을 디자인했고, 그 안에 조던의 프로생활 10년을 기념하는 글귀를 넣었어요. 계속해서 에어조던을 제작하길 원했던 팅커는 1995년 어떤 옷과도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농구화를 원하는 마이클 조던의 의견을 받아들여, 에나멜가죽으로 된 시제품을 마이클의 호텔방에서 보여주게 돼요. 시제품이 마음에 들었던 조던은 몇 달 뒤 NBA로 복귀하게 되고 완성되기 전 공개하지 말자는 팅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에어조던 11을 신고 데뷔 전을 치르게 돼요.
이후 계속되는 성공으로 에어조던 시리즈는 나이키의 대표 모델로 자리를 잡는데, 에어조던 15는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혹평을 받게 돼요. 당시 팅커 햇필드는 존경했던 나이키 공동창립자이자 스승이었던 빌 바우어만이 죽고, 자신의 아버지마저 3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슬럼프에 빠졌었다고 해요. 바쁜 일로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던 팅커는 이후 에어조던 개발에서 물러나고 평범하게 지내게 돼요.
하지만 2005년 마이클 조던의 부탁으로 에어조던 20의 디자인을 맡기 위해 복귀하게 돼요. 지난 20년간 마이클 조던의 삶과 농구를 결산하는 에어조던 20은 마이클 조던과 대화를 통해 완성했다고 해요. 두서없는 마이클 조던의 이야기를 메모지에 적으며 그를 상징하는 로고를 운동화에 담은 에어조던 20은 지금까지 팅커 햇필드가 디자인한 운동화 중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백 투 더 퓨처
1987년 에어맥스 1을 디자인하던 시기 팅커 햇필드는 영화 ‘백 투 더퓨처 2’의 제작에 참여하게 되는데, 28년 후인 2015년에 신을법한 운동화를 디자인하는 것이 팅커 햇필드가 맡은 일이었다고 해요. 앞서 설명했듯이 미래에 상상으로 생각했던 일들을 영화로 보여주었던 백 투더 퓨처의 특성상 거꾸로 매달리거나 스프링을 장착한 운동화 등 재미에 중점을 둔 운동화를 원했던 제작진에 팅커는 실제로 상용화될 수 있는 운동화를 원했다고 해요.
그렇게 해서 탄생된 운동화가 자동 신발 끈이 달린 나이키 운동화라고 해요. 운동화가 주인을 알아보고 주인의 사이즈에 맞게 끈을 조절하는 운동화는 2006년에 실제 제작에 들어가게 돼요. 이후 기술적 한계로 중단을 거듭하다가 첫 시제품을 완성하게 돼요. 그리고 백 투 더퓨처 안에서 마이클 J 폭스가 운동화를 신었던 2015년 10월 21일에 첫 시제품을 마이클 J 폭스에게 전달했어요.
팅커 햇필드
디자인에는 예술성이 들어있지만,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디자이너 탱커 햇필드. 예술성은 개인의 창의력을 표현하는 수단이지만, 디자이너는 개인의 표현보다 타인의 문제를 해결하고 돋보이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하는 디자이너. 미래를 내다보고 도발을 즐긴다는 그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둘러보며 디자이너는 다양한 디자인을 하고, 조화롭게 융합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살아생전 빌 바우어만이 팅커 햇필드에게 남긴 메모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고 해요. ‘팅커 햇필드, 건축가, 신발 디자이너, 육상 선수, 남편이자 아버지가 됐다. 이것으로 오리건 대학교는 의무를 다했다. 잘 있게, 빌 바우만’
우연히 보게 된 넷플릭스 다큐를 바탕으로 나이키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팅커 햇필드의 이야기를 했어요. 과학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한 건 운동화의 미래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기술의 발전으로 신어보지 않은 신발을 AR 기술로 신어볼 수 있는 앱도 개발된 현재,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기술발전을 기대하며 글을 마칠께요.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운동화와 스니커즈를 신어본듯한 AR기술이 접목된 어플 '워너킥스'
https://reviewheeya.tistory.com/25
이글은 어떤댓가를 받고 작성된게 아닌 순수하게 작성된 글이예요.
절대 광고아닌, #스마트폰 으로 #나이키 #운동화 를 체험하는 #워너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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